동국여지비고에 실린 기록: 태조 5년(1396년)에 돌로 쌓았는데 평양 감사(平壤監司) 조준(趙浚)이 공사를 감독하였다. 세종 4년(1424년)에 고쳤는데, 주위가 1만 4천 9백 35보로 주척(周尺)으로 재어서 8만 9천 6백 10자요, 높이가 40자 2치이다. 문 8개를 세웠다. 정남쪽 문을 숭례문(崇禮門)이라 하는데, 이층 지붕이고, 양녕대군(讓寧大君)이 현판 글씨를 썼으며 민간에서 남대문이라 부른다.
(1770년 목판인쇄본 지도에 실린 숭례문)
(1880년 사진)
(1894년 사진)
(19세기 말엽 사진)
(1900년 사진)
(20세기 초무렵의 사진)
(20세기 초무렵의 사진)
(20세기 초무렵의 사진)
(대한제국 멸망 후 성벽이 헐린 직후 무렵 사진)
(일제시대의 사진)
(한국전쟁 직후 사진)
(1962년 개보수 공사 직후 사진)
(많이 봐왔던 20세기 후반의 풍경)
(서울 관광 홍보 영상 등에서 정말 많이 보던 풍경)
(접근 횡단보도 재개)
(일반 개방 재개)
(2006년에 나온 성벽 복원 계획)
(2008년 2월 10일 화재발생)
(붕괴순간)
(2008년 2월 11일 현재 |